▲ PGA투어 경기 장면<와이드스포츠DB>

[와이드스포츠 임성윤 기자]‘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는 격언이 있다.

선수들의 스윙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지고 비거리가 늘고 ‘장타자’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격언은 통하지 않은지 오래다. 하지만 미국에서 열린 PGA투어 RBC 해리티지와 LPGA 롯데챔피언십에서는 딱 맞는 말이었다.

먼저 지난 15일 하와이에서 끝난 롯데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박인비(30)는 시즌 두 번째 우승과 세계랭킹 1위 복귀를 코앞에 뒀지만 짧은 퍼트를 연달아 실패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또 16일(한국시간) 끝난 RBC 해리티지에서도 2타차 단독선두를 달리던 김시우(23)도 결정적으로 15번홀, 17번홀 짧은 파 퍼트를 놓쳐 먼저 경기를 끝내고 기다리던 사토시 고이다라(일본)에게 연장 패배했다. 박인비와 김시우가 놓친 퍼트는 비슷한 거리로 약 2m가 채 되지 않았다.

투어선수들에게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반복된 것일까?

먼저 박인비의 예로 들어보자. 박인비는 자타가 공인하는 ‘퍼팅의 달인’이다. 먼 거리의 퍼트를 쏙쏙 넣어서도 그렇지만 애매한 거리의 짧은 퍼트를 놓치지 않아서다. 홀 주변의 라이를 더 잘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인비는 롯데 챔피언십 최종일 경기에서 수차례 짧은 퍼트를 놓쳤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이 박인비도 임팩트 때 헤드가 흔들린 실수를 한 차례 했지만 나머지는 공이 라인을 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홀 주변 미세한 스크래치 때문이다. 토너먼트 코스의 그린은 매우 빠르다. 특히 롯데챔피언십이 열린 코올리나 골프클럽은 그린이 작은 만큼 더 빨랐다.

빠른 그린에서 짧은 퍼트는 강하게 스트로크 할 수 없다. 라인을 타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박인비의 퍼트가 그랬다. 강하게 칠 수 없는 짧은 퍼트를 잘 스트로크 했지만 홀 주변 스크래치가 공의 방향을 바꿔 라인을 타야 할 공이 그대로 흐른 것.

그린에서 피치마크와 달리 스크래치는 퍼팅하는 선수가 수리를 할 수 없다. 라이개선으로 2벌타를 받는다. 스크래치는 대부분 공을 꺼낼 때 스파이크에 의해 생긴다. 그래서 선수들이 공을 꺼낸 다음 홀 주변을 헤드로 두드리는 것이다.

TV중계를 잘 보면 두 선수가 똑같은 선상에 공이 위치했을 때 같은 방향으로 실수하는 장면을 봤을 것이다.

김시우는 고이다라와 12언더파 동타를 이룬 상황에서 18번홀(파4) 두 번째 샷을 핀 앞에 잘 떨궜다. 동반라운드를 펼치며 11언더파 공동 3위에 있던 루크 리스트(미국)가 김시우와 같은 퍼팅선상에 위치했다.

리스트가 먼저 버디 퍼트를 했다. 잘 굴러가던 공은 홀 바로 앞에서 급격하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짧은 버디 퍼트를 남긴 김시우는 리스트의 공을 본 터라 성공확률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시우 역시 홀 왼쪽 벽을 타고 나갔다. 똑같은 실수다.

투어선수들은 동반자의 퍼트를 참고하지 않는다. 같은 선상이라도 퍼터의 생김새와 스트로크의 스타일에 따라 공에 스피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상대 선수의 공이 구르는 것을 보고 퍼팅 라인을 조정한다면 그 홀에서는 성공할 수 있어도 다음부터는 자신이 본 퍼팅 라인을 믿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골프팬들은 TV중계를 보면서 짧은 퍼트가 들어가지 않을 때 ‘나도 넣을 수 있는 걸 놓쳐’라고 답답해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른 것이 많다.

임성윤 기자  lsyoon79@hanmail.net

<저작권자 © 와이드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