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가 우승을 하기 위해선 캐디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전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뉴질랜드)는 우즈와 12년 동안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전성기'를 만들었다. 지금은 아담 스콧(호주)과 호흡을 맞추지만 그는 년간 100만달러를 벌어 들여 웬만한 선수보다 수입이 많았다.

한국의 열악한 투어 환경에서 윌리엄스 같은 캐디는 꿈도 꾸지 못하지만 한국프로골프(KP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도 전문 캐디가 있다. 골프캐디 윤슬기(32)씨다. 그는 어린 시절 축구 명문 울산 현대중학교에 스카우트된 월드컵 꿈나무였다. 중학교 3학년 국제대회에 출전해 다리 부상을 입고 독일에서 6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으나 다시는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넌 남들 공부할 때 축구를 했는데 이제 어떻게 뭘 하며 인생을 살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다른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에 이것 저것 기웃거리다 볼링을 1년 6개월 정도 했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때려 치웠어요. 그러다 주말에 TV에서 골프중계를 보고 골프를 시작했죠. 하고 싶어서기 보다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과 뭐라도 해야지 부모님 눈치 안볼 것 같아 핑계 삼아 시작했죠.(웃음)"

골프를 하면서도 그는 축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집중이 안되니 골프실력은 한계점에 부딪혔다. "군제대하고 복학해서 골프를 계속했는데 나 보다 더 볼을 못 쳤던 프로지망생들이 프로가 되는 걸 보고 골프를 접었어요. 사회에 나와 부모님의 도움으로 사업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초년병에겐 버거운 일이었죠."

사회에서 현실과 씨름하고 있는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활동하는 이동환(25)이 2004년 제89회 일본아마추어선수권 우승 당시 캐디를 해 주었던 최상범 교수님이 캐디를 해 보라는 권유를 해 주시며 제 방황을 끝낼 수 있었어요."

최 교수 밑에서 전문 캐디가 되기 위해 1년을 배운 그는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프로로 전향한 김혜동(26)의 캐디를 시작으로 허인회(25)와 2008년 필로스오픈 우승을 합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KLPGA투어 이현주(24.넵스)의 전담 캐디로 제5회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준우승을 일궈냈지만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김하늘(24.비씨카드)과 연장 두 번째 홀 세컨샷을 앞두고 이현주 프로는 8번 아이언을 꺼내 들었어요. 8번 아이언이 맞는 거리였지만 내 생각에 맞바람이 워낙 심해 나는 7번을 권했죠. 이현주는 연습라운딩 때 맞바람 상황에서 8번 아이언을 쳐 그린을 넘기게 되니 파 세이브가 어렵다고 했지만 제 생각엔 내리막 샷이라 로프트에 의해 볼이 더 떠 짧을 거라 생각했죠. 캐디로서 강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수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거죠. 결국 8번 아이언 샷이 그린 벙커에 빠져 우승을 넘겨 줬죠."

▲ CJ인비테이셔널에서 박은신과 함께/사진제공:윤슬기

2011시즌이 끝나고 그는 박은신(22.우리투자증권)과 1년 계약을 하고 JGTO Q스쿨에 나가 공동 1위를 했지만 Q스쿨에서는 연장전 없이 매칭스코어(백카운드)방식으로 결정하는데 이경훈(20.한체대)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2위를 합작했다.

박은신은 "슬기 형과 호흡을 맞추기 전엔 공격적인 플레이만이 버디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모든 홀에서 무조건 공격했어요. 그러다 보니 성적이 들쑥날쑥 했는데 CJ 인비테이셔널에서 형에 도움을 받아 공동 5위를 했어요. 일본 Q스쿨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형이 때론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공격이 아니라도 버디 찬스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줬거든요."라며, 일본 Q스쿨의 좋은 성적을 그에게 돌렸다.

윤슬기씨는 "코스에서 캐디는 조언을 할 수 있지만 판단은 선수의 몫이며, 조언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PGA투어에서 한국인 최초 전문캐디가 되어 우승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한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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