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80년대 초 특권층의 전유물로 서민들에게는 생소한 골프와 첫 인연을 맺은 '꽃띠' 소녀는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중년의 평범한 여인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골프와 사랑에 빠졌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시니어 투어프로이자 경기위원인 이은화(45)를 만나 그녀의 30년 골프사랑 얘기를 나누었다.

▲ KLPGA 시니어 투어프로 이은화(45)

-그 당시 골프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골프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80년대 초 부모님이 골프연습장을 했다. 방과후 부모님 뵈러 연습장에 드나들다 장난 삼아 쳤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30년을 함께 사랑하게 됐다.

-주니어 시절 국가대표를 했다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 골프연습장이 거의 없었다. 나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연습장에서 편히 연습한 덕에 골프채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국가대표 상비군(85년~87년)에 발탁됐다. 남자국가대표는 있었지만 여자는 대표 없이 상비군만 있었다. 특권층 부모들의 권유로 취미 삼아 골프를 하던 아이들과 달리 내가 골프를 좋아서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실력이 향상돼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골프에 남다른 자질을 보인 그녀는 주니어골프대회를 석권했다. 국내 아마추어 최강자로 군림하며,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아시아 주니어선수권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며 8월 프로 전향을 위해 테스트에 응시했다.

-프로 무대는 순탄치 안았다고 하던데?
87년 6월 아시아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고 프로 전향을 위해 8월 KLPGA 프로 테스트에 응시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

-아시아 최강자가 그럴 수도 있나?
내 실력으로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던 자만심이 화근이었다. 대회 중반까지 7타차로 컷트라인에 여유가 있었는데 갑자기 샷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고, 나머지 홀에서 OB를 쏟아냈다. 이듬해 테스트에서 합격해 프로가 됐다.

-첫 우승은 언제 했나?
당시엔 시드전이 없이 바로 투어에 나갈 수 있어 시합을 뛰었는데 첫 프로테스트의 악몽이 살아나며 매번 우승권에서 무너졌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맨탈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정신력에 대한 훈련을 혼자 했고, 프로 2년차인 90년 기회가 왔다. 신한 동해여자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팬텀여자오픈 우승으로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해 90년 KLPGA투어 상금랭킹 2위에 올랐다.

-골프 인생 30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90년 KLPGA선수권이다.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하고 국내 여자골프 사상 처음으로 3개 대회 연속 우승의 역사를 쓸 뻔 했는데 고우순 프로님과 연장 6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연습에 매진 하던 그녀는 전지훈련 중 허리 부상으로 다시는 우승컵을 안아 보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다 2001년 선수 생활을 접고 골프와 인연을 끊었다. 지인들의 부탁으로 가끔 레슨을 했지만 직업으로 삼지 않고 어울려 골프를 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녀의 소식을 궁금해 하던 당시의 동료들과 우연한 만남이 골프선수가 아닌 경기위원으로 2010년 그녀를 다시 골프계로 끌어 들였다.

"경기 위원으로 첫 대회를 나갔는데 첫 우승을 눈 앞에 뒀을 때 만큼 떨렸어요. 어린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보며 옛날 생각도 나고…."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포기 해야 했던 그녀의 마음 속에 눌려 있던 그리움이 되살아났고, 그녀는 열여섯 살의 그때로 다시 돌아가 골프채를 잡았다. 그리고 2011년 KLPGA 시니어투어 5차전부터 '루키'로 복귀해 5경기를 뛰며 중상위권 성적을 이끌어냈다.

다시금 골프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현재 스카이72 골프다이제스트 아카데미 주니어 여자선수 담당 코치를 겸하며 올 시즌 KLPGA 시니어투어 선수로 경기위원으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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