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은 조민규(24)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기자의 말에 얼굴부터 빨개졌다. 평소 대회장에서 마주치며 알고 지내는 사이라 예상 밖이었다. 일본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간사이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오른 그였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은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조용히 투어를 뛰고 있는 조민규"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한일골프국가대항전인 '밀리언야드컵' 한국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국내외에서 인정 받는 프로골퍼다.

조민규가 국내 골프팬들에게 알려진 건 2010년 JGTO 상금왕 출신의 김경태(25)를 압박하며 우승을 넘보던 2011년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다. 김경태는 이 대회에서 기자에게 "현재 타수차는 많이 나지만 우승에 최대 걸림돌은 조민규다.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JGTO의 '숨은 실력자'"라고 말했다.

조민규는 수만 명이 모인 갤러리 앞에서도 흔들리거나 위축되지 않는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친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국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조민규와 형 재익씨

그는 '세리키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지역에서 열리는 세리배(박세리) 골프대회에 갤러리로 따라갔다 골프를 하고 싶어 아버지를 졸랐다. 자식들의 진로를 고민하던 아버지는 큰 아들(조재익 27)은 영어공부를 작은 아들(조민규)은 골프를 시키기 위해 필리핀으로 이민을 떠났다.

아버지에게 골프의 기본을 잠시 배웠지만 독학과 연습으로 골프를 배웠다. 그러던 그에게 인생의 큰 전환기가 될 사람이 나타났다. 연습하던 골프장 헤드프로의 소개로 일본인 아저씨를 알게 됐다.

"아저씨가 프로가 목표라면 일본에 '미니투어'가 많은데 와서 도전해 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시합경험도 없고 필리핀에서 골프를 시작한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일본으로 갔어요. 그때가 18살이었어요."

"한 달에 2번 정도 하루 동안 열리는 미니투어에 몇 번 나갔는데 아저씨가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2007년 JGTO Q스쿨에 응시해 보라는 겁니다."

조민규는 Q스쿨 준비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에겐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JGTO Q스쿨은 세계 각지의 선수들이 도전한다. KPGA투어 프로들도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Q스쿨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경험 삼아 나간 아마추어가 단 한번에 4차전까지 무난히 통과해 풀 시드를 거머쥐며 일본 생활이 시작됐다.

막상 투어선수가 됐지만 투어에 대한 정보나 경험을 전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즌을 앞두고 부랴부랴 형이 캐디백을 멨다. 선수나 캐디 모두 백지상태로 몸으로 부딪치며 하나씩 배워 나가다 보니 1년이 지나고 다시 Q스쿨에 가 통과했다.

조민규는 "2년을 몸으로 부딪치며 선수들이 연습은 어떻게 하는지 코스는 어떻게 공략하는지 야드지북은 어떻게 보고 관리하는지 배우고 적응했죠." 하지만 그는 세 번째 Q스쿨은 통과하지 못했다.

"한달 정도 골프채를 놓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잘 한 일'이라며 코리안투어 Q스쿨에 응시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골프채를 잡고 처음 맛 보는 좌절이다.

▲ 연습라운딩에서 코스를 탐색하는 조민규와 형 재익씨

1년을 절치부심한 조민규는 2010년 JGTO에 다시 입성해 세가세미컵 최종라운드에서 소노다 순스케, 오사나이 마모와 함께 연장전까지 가며 생애 첫 우승을 목전에 두었다.

"소노다 순스케가 티샷이 해저드에 빠져 민규와 오사나이의 승부였는데 파로 홀 아웃 했고, 민규는 내리막 버디 퍼팅이었는데 그린이 무척 빨랐어요. 저는 2퍼팅으로 파 세이브하고 다음 홀에서 기회를 보자고 했는데 민규가 버디를 노리고 친 퍼팅이 보기가 되어 준우승했어요. 하하~" 경험부족으로 놓친 우승이었다고 형 재익씨는 말한다.

또 하나의 경험을 몸으로 배운 조민규는 2011년 간사이오픈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독학골프로 일본 열도를 정복했다.

조민규는 지난 4월 JGTO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GS칼텍스 매경오픈에 출전했다. "필리핀에서 골프를 시작해 일본에서 프로에 데뷔해 한국투어에 출전한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기회가 된다면 자주 나와 한국골프팬들에게 인사 드리고 싶어 일본 메이저를 포기했어요."

지난해 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지만 오는 29일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골프국가대항전인 '밀리언야드컵' 한국대표로 선발되며 다시 한번 일본 열도를 정복할 기회를 잡았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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